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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일상

은퇴 후에야 시작된 나의 말들

예전의 저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회사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회의 자리에서도 꼭 필요한 말만 했고,
감정을 섞지 않으려 했습니다.

괜한 농담이나 장황한 설명은
효율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늘 믿었습니다.
말보다 결과가 먼저라고.
표현보다 책임이 중요하다고.

 

아마 그래서
저를 차갑게 본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의 저는 조금 다릅니다.

 

은퇴 후, 나의 말들이 시작된 자리.

 

 

블로그에 글을 쓰고,
하루의 루틴을 기록하고,
투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띵똥이의 일상을 적어 내려갑니다.

 

예전보다 훨씬 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말이 많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쌓여 있던 말이
이제야 나올 자리를 찾은 것뿐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효율이 우선이었습니다.

말은 필요할 때만,
감정은 최소한으로.

 

그것이 조직 안에서의 방식이었고,
동시에 저의 방식이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누군가의 평가도 없고,
눈치를 보아야 할 자리도 없으며,
보고서 마감도 없습니다.

 

시간이 생기자
묻어 두었던 생각들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정리되지 못했던 감정들,
그냥 지나쳤던 장면들,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말들이
글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ISTJ입니다.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계획을 세우며,
결과를 따지는 성향은 그대로입니다.

 

다만 이제는
논리 안에 감정을 조금 더 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논리적인 사람도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보여줄 공간이 없었을 뿐입니다.

요즘 말이 많아진 이유는
가벼워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단단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말해도 괜찮은 시간이고,
기록해도 괜찮은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 기록할 것입니다.

 

그 말들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제 삶을 정리하기 위한 말일 것입니다.

 

조용했던 사람이
늦게 꺼내는 이야기.

그 시작이 지금일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조용했던 사람의 말이 늦게 시작되었다고 해서,
그 가치까지 늦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