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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일상

멈춰버린 4월의 봄 여행 계획, 치아 발치 통증과 처방약 속쓰림의 기록

예고 없이 찾아온 발치 수술, 모든 계획이 멈췄다

어느덧 블로그의 70번째

기록을 남기는 날입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4월에 떠날

가족 여행 준비로

들떠 있어야 했겠지요.

 

삼성전자 배당금을

차곡차곡 모아 13살 띵똥이와

아내와 함께 떠날

근사한 봄 여행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참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치아 문제로

발치 수술을 받게 되면서,

 

공들여 준비했던 여행 계획은

한순간에 '물 건너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가방을 싸는 대신,

 

저는 지금

치과 처방약 봉지를 뜯으며

욱신거리는 통증과 싸우고 있습니다.

치과 처방약 봉지를 뜯으며 욱신거리는 통증과 싸우고 있습니다.

 

 

은퇴 후 누리는

평일의 여유가 건강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는 중입니다.

 

3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며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정작 내 몸의 신호를 무시했던

대가를 이제야 치르는 기분입니다.

 

오뚜기 스프와 죽으로 버티는 지루한 식단

 

통증을 잡기 위해서는

독한 처방약을 먹어야 하고,

그 약을 버티려면

무엇이라도 속을 채워야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씹을 수 없으니

선택지는 뻔합니다.

 

주방 선반에는

오뚜기 스프와 샘표 밸런스 죽,

연두부, 두유 같은

유동식들만 가득합니다.

발치 후 첫 끼니로 선택한 오뚜기 스프. 씹을 필요가 없어 편했지만, 밋밋한 맛에 서글퍼졌다.

 

 

어제는

오뚜기 스프를 끓여 먹고,

오늘은

샘표 밸런스죽을 데워 먹었습니다.

샘표 밸런스죽. 가공식품이라 그런지 죽을 먹은후에 처방약을 먹었는데도 속이 쓰리다.

 

 

중간중간

검은콩 두유와 바나나로

허기를 달래 보기도 합니다.

 

평소 요리하는 것을 즐기고,

맛있는 안주에 술 한 잔 곁들이는 것을

소소한 낙으로 삼던 저에게

이런 식단은 그 자체로

고문이나 다름없습니다.

 

입안은 여전히 욱신거리고,

부드러운 음식들만 넘기다 보니

입맛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씹는 즐거움이 사라진 식탁이

이토록 적막할 줄은 몰랐습니다.

 

 

발치 통증보다 무서운 처방약의 역습과 속 쓰림

문제는 통증뿐만이 아닙니다.

빈약한 식사 후에 들이키는

독한 항생제와 소염진통제가

위벽을 긁어대는지,

 

이제는

속까지 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름대로 속을 보호하려고

연두부와 바나나를 챙겨 먹었지만,

가공된 수프의 염분이나

약 기운 때문인지 속이 더부룩하고

쓰린 현상이 가시질 않습니다.

 

치아 몇 개가 빠졌을 뿐인데

몸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는 기분입니다.

 

밤새

잇몸의 박동 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치고,

 

아침에는

쓰린 속을 부여잡고

다시 미지근한 죽을 한 숟가락 뜹니다.

 

은퇴 후의 삶에서

가장 큰 자산은

주식이나 배당금이 아니라,

 

결국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강'이라는

사실을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다시금 깨닫고 있습니다.

 

 

금연과 금주, 예민함이 극에 달한 은퇴자의 하루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저를 힘들게 하는 것은

강제로 시작된

'금연'과 '금주'입니다.

 

치과에서는 염증 예방을 위해

술과 담배를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평소 생각을 정리하며

태우던 담배 한 개비와,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던

술 한 잔의 여유가 사라지니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솟구칩니다.

 

창밖의 봄꽃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데,

 

정작 저는 집 안에서

퉁퉁 부은 볼을 부여잡고

예민함의 끝을 달리고 있습니다.

 

띵똥이가

옆에서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도

예전처럼 다정하게 반응해 주기가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짜증 섞인 시간 또한 회복을 위해

반드시 견뎌내야 할 과정이겠지요.

 

지금 이 순간의 불편함과

금단의 고통을 블로그에 기록하며

스스로를 다독여 봅니다.

 

완쾌된 후,

제대로 된 음식을 씹으며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는

그날이 제가 맞이할 진정한

70번째 기념일이 될 것입니다.

 

아빠가 예전과 다르고 뭔가 이상하다를 느낀 것 같은 띵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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