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요일 저녁 6시가 다 되어 가네요.
오늘 하루는 유독 시간이 빨리 흐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블로그에 이런저런 정보성 글이나 새로운 도전기들을 많이 올렸는데,
오늘은 조금 편안하게 제 주방 이야기를 남겨보려 합니다.

오늘의 미션은 '냉장고 파먹기 2'.
명절 후 며칠간 남은 명절음식들을 해치우느라 매일 비슷한 음식만 먹다 질려가고 있었는데, 냉장고를 보니 일주일 전 아내가 가져온 몽글몽글한 순두부가 유통기한 임박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주면 기한을 넘길 판이라, 식재료를 아끼는 제 성격상 가만히 둘 수 없었죠. 냉장고를 뒤져보니 지난번 먹다 남은 햄과 소시지가 나옵니다.
"그래, 너희들 오늘은 제대로 한번 섞여보자." 그렇게 별 반찬 없이 슥슥 비벼먹을 수 있는 '순두부 부대 짜글이 찌개'가 시작되었습니다.
제 요리에는 계량컵이나 스푼 따위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어남선생'처럼 꼼꼼하게 몇 스푼, 몇 그램 재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저는 그저 재료를 툭툭 던져 넣으며 오직 직감으로 맛을 잡는 '차승원 님 스타일'을 고수합니다.

냉장고 재료
양파, 호박, 파, 청양고추, 냉동 가리비(조금), 소고기민찌, 콘킹 소시지(3개), 통조림햄 1개, 어묵 1장, 버섯(조금), 뭉글뭉글 순두부
양념
간장, 식용유, 고춧가루, 간 마늘, 다시다 또는 미원(조금)
조리방법
1. 양파와 간 마늘, 소고기민찌를 식용유를 두른 팬에 볶다가 간장, 고춧가루를 넣어 타지 않게 볶아 수제 고추기름을 만들어
줍니다.
2. 위재료들을 볶은 팬에 물을 3컵 정도 넣고 재료 중 소시지, 햄, 호박, 버섯, 어묵, 가리비를 넣고 팔팔 끓여줍니다.
3. 한번 끓었으면, 나머지 재료 순두부, 청양고추, 잘게 썬파를 넣어줍니다. 이때 맛을 보면 어묵, 소시지등에서 맛이
우러나와 그렇게 싱겁지 않을 겁니다.
4. 입맛에 맞게 간하시고 MSG가 싫으시면 기호에 맞게 소금 또는 간장으로 간 하면 됩니다.
참고로 저희 가족은 소금을 넣지 않고 다시다 조금으로 간합니다.
눈대중에 팁이 있다면 전체적으로 짜지 않게 일단 조금씩 넣으시고 한소끔 끓인 후 맛을 보고 부족한 간을 하면 됩니다.
계량에 따라 정확히 요리하여도 완성 후 맛보면 원하는 맛이 아닌 경우도 많거든요. 음식은 내 입맛에 맞아야 합니다. 식당 운영을 하는 게 아니니까 내 입맛과 가족들 입맛이 가장 중요시되어야겠지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찌개 위로 몽글몽글한 순두부가 하얗게 꽃을 피웁니다. 짭조름한 부대찌개 국물이 순두부를 만나니 한결 부드럽고 깊은 풍미를 냅니다. 갓 지은 하얀 쌀밥에 버터 한 조각과 짜글이 한 국자 듬뿍 떠서 비벼 먹으며 아들과 마주 앉아 있자니, '이게 바로 은퇴 후 소소한 행복이구나' 싶습니다.
은퇴 후의 삶도 이 찌개를 닮은 것 같습니다. 정해진 레시피대로 살지 않아도, 내 감각과 경험을 믿고 툭툭 던지다 보면 결국 나만의 근사한 맛이 완성되니까요.
오늘도 이렇게 냉장고 하나를 무사히 비워냈고, 냉장고를 비우는 일이 결국 하루를 채우는 일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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